《달과 6펜스》 리뷰 – 달을 좇다 6펜스를 버린 남자, 그리고 아직도 망설이는 우리
서론: 달과 동전 사이에서,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윌리엄 서머싯 몸의 소설 《달과 6펜스》는 제목만으로도 강렬한 대비를 떠올리게 합니다. 고개를 들어야 보이는 달과, 발밑 어딘가에 떨어져 있을지 모르는 6펜스짜리 동전. 하나는 꿈과 열정을 상징하고, 다른 하나는 현실과 생계를 가리키는 듯합니다.
이 소설은 바로 그 사이에 끼인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묻습니다. “예술을 위해, 진심으로 원하는 삶을 위해, 당신은 어디까지 버릴 수 있는가?” 그리고 동시에, “그런 선택이 과연 옳은 것인가”라는 불편한 질문도 함께 남깁니다.

1. 일상을 버리고 떠난 남자 – 런던에서 파리로
소설의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는 런던의 평범한 중년 주식 중개인입니다. 별로 다정하지는 않아도 가족이 있고, 안정적인 수입이 있고, 남들이 보기엔 그럭저럭 무난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가족과 직장, 사회적 지위를 모두 뒤로한 채 파리로 떠납니다. 이유는 단 하나,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그는 주변 사람들의 충격과 비난을 뒤로한 채, 마치 오래 숨 참고 있다가 이제야 숨을 쉬기 시작한 사람처럼 세속적인 삶을 통째로 벗어 던집니다.
우리가 이 장면에서 받는 충격은 단순히 “가정을 버렸다”는 도덕적 문제 때문만은 아닙니다. 어쩌면 더 깊은 곳에서, 이렇게까지 모든 것을 던지고 달려갈 만한 열정이 내게는 없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스트릭랜드에게 분노하면서도, 동시에 묻게 됩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만큼까지 미쳐 본 적이 있었나?”
2. 예술과 인간관계의 충돌 – 천재인가, 괴물인가
파리에서 스트릭랜드는 사회적 예의나 인간적인 배려를 거의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는 가난과 병을 견디면서도 그림 앞에서는 냉혹하고,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에게조차 상처를 주고 등을 돌립니다. 가족에게는 피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친구와 지인들에게도 감당하기 힘든 상실감을 안깁니다.
소설이 흥미로운 지점은, 작가가 그를 일방적으로 비난하지도, 미화하지도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그는 분명 이기적이고 잔인한 인간이지만, 동시에 예술 앞에서 타협하지 않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스트릭랜드는 자신의 욕망에 끝까지 충실한 인간의 극단을 보여줍니다.
독자로서 우리는 그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요? 천재라서 이런 행동이 허용되는 걸까요, 아니면 아무리 예술이라도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있는 걸까요. 《달과 6펜스》는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대신 “예술의 절대성”과 “인간적 윤리”가 충돌하는 현장을 그대로 보여주며, 판단은 읽는 이에게 남겨 둡니다.
3. 파리에서 타히티까지 – 문명 밖에서 완성된 자유
스트릭랜드는 파리에서도 끝내 안착하지 못합니다. 예술의 중심지라 불리던 도시조차 그에게는 여전히 사람과 관계, 평판과 경쟁이 넘쳐나는 공간일 뿐입니다. 결국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문명 세계의 끝자락처럼 보이는 타히티로 향합니다.
낯선 섬에서 스트릭랜드는 도시에서 기대되던 예의와 역할에서 완전히 벗어나 오로지 자기 안에서 끓어오르는 이미지와 색채에만 몰두합니다. 타히티의 풍경과 사람들, 자연과 빛은 그의 그림 속에서 문명과 이성이 아닌 본능과 직관의 언어로 재탄생합니다.
그가 남긴 작품들은 세상과의 타협을 완전히 끊어낸 채, 자기만의 세계에 도달한 예술의 끝지점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자유는 대가 없는 선물이 아닙니다. 그는 삶의 마지막까지 외롭고 가난했으며,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은 상처만을 안고 남습니다.
4. 폴 고갱의 그림자, 그리고 현실의 예술가들
많은 독자와 연구자들은 스트릭랜드의 삶에서 실제 화가 폴 고갱의 흔적을 발견합니다. 몸 역시 고갱의 삶, 특히 타히티 시기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이 소설을 구상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달과 6펜스》는 단순한 예술가 전기가 아닙니다. 작가는 인물의 성격과 상황을 재구성해, “한 인간이 자신의 진심에 끝까지 충실한다는 것”이 얼마나 매혹적이면서도 잔혹한 선택인지를 보여줍니다.
오늘날의 현실에서도 우리는 예술가·창작자·프리랜서·1인 크리에이터 등 여러 형태의 “스트릭랜드들”을 봅니다. 안정된 직장을 떠나 도전하는 사람들, 가족과 주변의 기대와 갈등하며 자기 길을 찾으려는 이들. 이 소설은 그들의 이야기를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자기 진심을 선택하는 삶”이 무엇인지 곱씹게 합니다.
5. 6펜스를 쥔 채 달을 올려다보는 우리에게
대부분의 우리는 스트릭랜드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지 못합니다. 가족이 있고, 통장 잔고가 있고, 책임져야 할 매일의 6펜스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선택이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두렵고 불편하기도 합니다.
《달과 6펜스》가 흥미로운 이유는, 우리에게 “너도 달을 위해 6펜스를 버려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대신 아주 느리게, 집요하게 묻습니다.
- “당신이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 “지금의 일상은 그 질문에 솔직한 삶인가?”
- “모든 것을 버릴 수 없다면, 최소한 어떤 작은 선택만큼은 달을 향해 내딛고 있는가?”
우리는 대부분 현실을 떠나지 않은 채 살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속에서 달을 바라보는 일을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퇴근 후의 한 시간 그림 그리기가, 어떤 이에게는 아무도 읽지 않을지 모르는 글을 쓰는 일이, 또 다른 이에게는 남들이 이해하지 못할 취미가 자신만의 “작은 타히티”가 될 수 있습니다.
마무리: 예술의 광기 속에서, 결국 인간을 바라보다
《달과 6펜스》는 예술가 한 사람의 극단적인 삶을 다루지만, 결국에는 우리 모두의 얼굴을 비추는 이야기입니다. 스트릭랜드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선택에 분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가 끝까지 지켜낸 어떤 순수함과 집착에 마음이 흔들립니다.
윌리엄 서머싯 몸은 냉정하고 간결한 문체로, 예술의 광기와 인간의 이기심, 자유에 대한 갈망을 해부합니다. 이 소설은 예술을 찬양하는 영웅담도 아니고, 예술가를 비난하는 교훈담도 아닙니다. 그저 한 인간이 달을 향해 끝까지 걸어간 흔적을 보여주고, 그 앞에서 우리가 스스로에게 어떤 판결을 내리는지 지켜볼 뿐입니다.
책을 덮고 나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나는 오늘도 6펜스를 줍느라, 하늘의 달을 올려다보는 일을 잊고 있는 건 아닐까?” 그 질문이 마음 한켠에 남는다면, 《달과 6펜스》는 이미 제 역할을 다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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