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윌리엄스 『스토너』 – 화려하지 않아도 끝까지 견디는 삶에 대하여
누군가의 인생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대단한 사건”을 찾습니다. 성공, 명예, 스캔들, 극적인 반전 같은 것들 말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삶은 그렇게 요란하지 않습니다. 존 윌리엄스의 소설 『스토너』는 바로 그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삶”을 끝까지 응시하는 작품입니다. 거대한 성취도, 화려한 결말도 없지만 한 사람의 생이 조용히 완성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오히려 평범함이 가진 깊이를 새삼 바라보게 됩니다.
1. 『스토너』의 삶 – 농장의 아들에서 대학 강단까지
윌리엄 스토너는 미국 시골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납니다. 그의 부모는 아들이 농업을 더 잘 이해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를 농업 대학에 보내죠. 그러나 스토너의 인생은 한 강의실에서 조용히 방향을 틀게 됩니다. 우연히 듣게 된 문학 수업에서 그는, 자신이 이전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어떤 떨림을 느끼게 됩니다.
그 한 과목을 계기로 스토너는 전공을 바꾸고, 농장으로 돌아가는 대신 대학에 남아 문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길을 선택합니다. 이후 그는 평생을 대학 강단에서 보내지만, 그의 인생은 평탄하지 않습니다. 관계에서의 서툼, 직장 내 갈등, 가족과의 거리, 마음을 흔드는 사랑과 그 이후의 상실까지— 스토너의 삶에는 작고 큰 파문들이 일어나지만, 세상은 그를 특별히 기억하지 않습니다.
이 소설의 인상적인 지점은 바로 여기입니다. “영웅적인 업적이 전혀 없는 한 사람의 삶”을 끝까지 따라가면서도, 그 삶이 조금도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 존 윌리엄스는 외형적인 사건이 아니라, 그 안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마음과 태도를 문장의 힘으로 끌어올립니다.
2. 눈에 띄지 않는 사람에게서 발견한 품격
우리는 흔히 인생의 가치를 “얼마나 멀리 올라갔는가”로 재곤 합니다. 얼마나 높은 자리까지 승진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았는지, 얼마나 큰 성취를 남겼는지 같은 것들 말이죠. 그런 기준에서 본다면, 스토너의 인생은 분명 눈부신 편이 아닙니다.
그는 화려한 명성을 얻지도 못하고, 세상에 이름을 크게 남기지도 못합니다. 교수로서의 커리어도 그리 빛나지 않으며, 개인적인 삶에서도 수많은 상처와 오해를 겪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읽고 나면 묘하게 이런 감정이 남습니다. “이 사람의 삶은 실패가 아니라, 끝까지 자기 자리를 지키려 한 한 인간의 기록이구나.”
『스토너』가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인생의 품격은 남들이 매겨 주는 점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 안에서 얼마나 진심을 다해 살아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이 기준으로 본다면, 스토너는 결코 초라한 인물이 아닙니다. 그는 비틀거리면서도 자신이 선택한 삶에서 완전히 도망치지 않고, 조용히 하루하루를 쌓아 올린 사람입니다.
3. 문학과 일 – 언어로 세상을 버티는 한 사람
스토너의 인생에서 가장 단단한 축은 문학입니다. 그의 하루는 강의와 연구, 그리고 책과 함께 흐릅니다. 그가 학생들에게 큰 인기를 얻는 스타 교수는 아니지만, 한 편의 시와 한 줄의 문장을 끝까지 붙들고 씨름하는 사람입니다.
이 소설에서 문학은 화려한 지식 자랑의 도구가 아니라, 삶을 버티게 만드는 언어로 등장합니다. 현실에서 큰 변화를 일으켜 주지는 못하지만, 크고 작은 상실을 견디게 하는 내적 지지대가 되어 주죠.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나누는 대화, 책 속 문장을 천천히 읽어 내려가는 순간들이 스토너에게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현실의 무게가 버거울 때, 우리는 종종 “책은 아무 쓸모가 없다”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스토너』는 이렇게 속삭이는 듯합니다. “문학은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지는 못하지만, 그 문제를 마주할 수 있게 해주는 언어를 건네 준다”고. 도피가 아니라, 이해와 견딤의 수단으로서의 문학. 스토너가 끝까지 놓지 않는 것은 바로 그런 의미의 책들입니다.
4. 실패와 고독 속에서도 이어지는 하루 – 오늘의 우리가 공감하는 지점
『스토너』가 뒤늦게 전 세계에서 사랑받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스토너가 겪는 감정들이 지금 우리의 현실과도 자연스럽게 겹쳐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직장 내에서의 불합리, 잘 풀리지 않는 인간관계, 가족과의 거리감, 마음을 기댈 곳이 없어지는 순간들. 이 소설에 나오는 갈등의 대부분은, 특별한 시대에만 존재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열심히 노력해도 결과가 따라오지 않을 때, 성실함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할 때, “나는 과연 잘 살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이 목 끝까지 차오를 때가 있습니다. 스토너 역시 그런 질문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그는 화를 크게 내지도,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지만, 그 고요함 속에는 우리가 다 알 만한 인간적인 분투가 숨어 있습니다.
- 눈에 띄는 성취가 없더라도, 자신의 일을 계속해 나가는 사람의 고집
- 누구에게도 완전히 이해받지 못하지만, 그래도 매일 자리로 돌아오는 태도
- “이만하면 됐다”는 말을 듣지 못해도,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는 마음
그래서 스토너의 인생은 겉으로 보면 실패처럼 보이지만, 안쪽에서 보면 오히려 부서지지 않은 존엄의 기록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그를 통해,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어도 삶이 결코 값싸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5. 시간이 증명한 걸작 – 늦게 피어난 책의 운명
흥미로운 점은, 『스토너』 자체의 행보도 주인공의 인생과 닮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출간 당시 이 소설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고, 한동안 잊힌 작품처럼 취급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수십 년이 흐른 뒤, 조용히 이 책을 사랑해 온 독자들과 작가들의 입소문이 쌓이면서 『스토너』는 “뒤늦게 빛난 명작”으로 재조명되기 시작합니다.
화려한 데뷔도, 즉각적인 베스트셀러의 자리도 없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남게 된 책. 이것은 어쩌면, 스토너라는 인물이 살아온 방식과도 겹쳐 보입니다. 당대의 박수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대신, 늦게라도 진심을 알아보는 독자들에게 천천히 도달하는 작품. 그 점에서 『스토너』는 “성공의 타이밍”에 대한 우리의 집착을 조용히 비껴 갑니다.
6. 『스토너』를 지금 읽는다는 것
요란한 동기부여와 성공담이 넘치는 시대에, 『스토너』는 정반대의 방향에서 다가오는 소설입니다. 이 책에는 목표를 이루는 비법도, 삶을 단숨에 바꿀 만한 문장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하루를 묵묵히 견디고 있는 사람의 어깨에 아주 조용히 손을 얹는 듯한 위로가 담겨 있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특히 어울립니다.
- 눈에 띄는 성취는 없지만, 그래도 매일 자기 일을 해나가고 있는 사람
-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라는 질문이 자주 떠오르는 사람
- 요란한 성공담 대신, 조용한 삶의 무게를 이해해 주는 이야기를 찾는 독자
- 문학이 삶을 바꿀 수 있을지보다, 적어도 삶을 함께 견뎌 줄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
『스토너』는 한 번 읽고 잊어버리는 책이 아니라, 인생의 다른 시기에 다시 펼쳐 보고 싶은 책에 가깝습니다. 나이가 들고, 책임이 늘어나고, 삶의 속도가 조금 느려졌다고 느낄 때 다시 읽으면 같은 문장 속에서 전혀 다른 위로를 발견하게 되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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