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산업화의 그늘에서 지금 우리의 도시를 바라보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1970년대 한국 산업화의 현장을 정면으로 응시한 소설입니다. 공장 굴뚝과 고층 아파트, 도로와 개발 계획 뒤편에서 밀려나야 했던 사람들의 얼굴을 집요하게 따라가죠. 흥미로운 점은, 이 소설을 다시 펼치는 일이 더 이상 “옛날 이야기” 복습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재개발, 젠트리피케이션, 주거 불안이라는 이름으로 같은 질문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1. 1970년대의 풍경, 그러나 현재형인 질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포장된 “고도성장 신화”의 뒷면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국가와 기업이 내세운 개발 계획은 도시를 새롭게 바꾸었지만, 그 과정에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오래도록 주변부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작가는 바로 그 주변부의 목소리를 문학의 중심으로 끌어올립니다.
오늘날의 독자에게 이 소설이 여전히 생생하게 읽히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1970년대 판자촌 철거는 이름만 바뀌어 21세기에는 재개발, 재건축,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이어졌습니다. 소설 속 난장이 가족이 겪는 집값, 철거, 이주 문제는 지금의 청년 세대와 도시 빈곤층이 겪는 주거 불안과 겹쳐 보입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묻게 됩니다. “개발과 성장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가?”
2. 김불이 가족 – 산업화 속 한 가정에 압축된 사회 구조
작품의 중심에 놓인 김불이 가족은 단순한 비극적 인물이 아니라, 산업화 체제 속에서 구조적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축소판입니다. 아버지 김불이는 신체적 약자이자 사회적 약자로, “노력하면 올라갈 수 있다”는 성장 신화에서 애초에 배제된 존재입니다.
가족 구성원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현실에 반응합니다. 어떤 인물은 직접적인 저항을 선택하고, 또 다른 인물은 체념에 가까운 순응, 누군가는 타협과 계산을 통해 살아남을 길을 찾으려 합니다. 작가는 이들을 선악의 도식 속에 가두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떤 선택도 완전히 깨끗할 수 없는 조건”을 보여 주며, 독자가 각 인물의 윤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도록 유도합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한 가정의 이야기가 곧 제도의 설계와 노동·주거 구조의 문제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3. 산업화와 구조적 폭력 – 눈에 보이지 않는 힘들
이 소설이 말하는 폭력은 경찰의 진압이나 철거 현장의 물리적 강제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더 근본적인 폭력은 제도와 구조에서 비롯됩니다. 낮은 임금, 불안정한 고용, 주거를 지킬 수 없는 임대 구조, 사회 안전망 부재 등은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사람들의 삶을 서서히 궁지로 몰아갑니다.
조세희는 거창한 이론 대신, 가족이 방 한 칸을 지키기 위해 겪어야 하는 수모와 협상, 공장 노동자가 감내해야 하는 위험과 불합리를 통해 “구조적 폭력이 어떻게 일상의 풍경으로 굳어지는지”를 보여 줍니다. 국가와 자본, 제도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선택들이 현장에서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문학은 그 디테일을 통해 묻고 있습니다.
4. ‘난장이’와 ‘작은 공’ – 누구의 꿈이 떠오르고, 누구의 삶이 추락하는가
제목에 등장하는 “난장이”와 “작은 공”은 이 작품의 상징을 대표하는 이미지입니다. 난장이라는 존재는 단순한 약자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그는 사회가 정한 기준에서 늘 “부족한 존재”로 취급되고, 성장 서사의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사람을 상징합니다.
그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공은 잠시 하늘로 떠오르지만, 결국 다시 떨어질 운명에 있습니다. 이는 성장 신화의 “상승” 이면에 있는 불안정성과 취약성을 떠올리게 합니다. 누구에게는 위로 향하는 엘리베이터가 주어지지만, 누군가는 그 엘리베이터가 세워지는 자리를 비켜나기 위해 집을 비워야 합니다.
그래서 이 소설의 질문은 단순히 “희망이 있는가?”가 아닙니다. “누가 공을 쏘아 올릴 수 있었는가, 그리고 누가 그 공을 올려다볼 시간조차 허락받지 못했는가”. 그 질문은 곧, 성장의 과실이 어떻게 분배되었는지, 성장의 파편은 누구에게 떨어졌는지를 되묻는 정치경제적 질문이 됩니다.
5. 모자이크 구성 – 파편화된 목소리가 만드는 하나의 풍경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형식 역시 눈여겨볼 만합니다. 이 작품은 하나의 직선적인 줄거리가 아니라, 여러 편의 단편들이 연결된 모자이크 구조를 취합니다. 각 편마다 화자가 달라지고, 시점이 바뀌며, 도시의 다른 구역과 다른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이 파편적인 구성은 혼란을 일으키는 대신, 오히려 현실에 더 가까운 느낌을 줍니다. 실제 도시 역시 단일한 시선으로는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른 위치에 서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충돌하고 교차할 때 비로소 전체 풍경이 드러납니다. 작가는 독자에게 말합니다. “이 세계를 한 사람의 이야기로 이해했다고 생각하지 말라.” 여러 조각을 함께 보려는 시도 자체가 윤리적 태도임을 강조하는 셈입니다.
6. 1970년대 철거에서 2020년대 젠트리피케이션까지
작품을 덮고 나면 자연스럽게 현재의 도시를 떠올리게 됩니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오래된 동네가 사라지는 장면, 임대료 상승으로 삶의 터전을 잃는 소상공인과 세입자들, 집은 있지만 “집다운 삶”을 누리기 어려운 청년들의 주거 현실까지. 형태는 달라졌지만, “터전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하는 사람들”의 풍경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 지점에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과거 기록을 넘어, 오늘의 재개발·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바라보는 하나의 렌즈가 됩니다. 문학이 제공하는 것은 구체적인 정책 해법이 아니라, “누가 보이지 않는지, 누구의 이야기가 쉽게 잊히는지”를 꾸준히 상기시키는 기억의 힘입니다. 소설 속 난장이 가족을 떠올리는 순간, 우리는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도시 변화도 단순한 “뉴스 기사”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의 붕괴라는 사실을 더 선명하게 느끼게 됩니다.
7. 독자에게 남는 윤리적 질문
이 작품을 읽는 일은 슬픔에 공감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조세희는 난장이 가족을 동정의 대상으로만 그리기보다, 그들의 삶이 “제도와 구조가 만든 결과”임을 집요하게 보여 줍니다. 그렇다면 남은 질문은 자연스럽습니다. “이 사회의 풍경을 바꾸는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독자는 각자의 위치에서 다른 답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도시를 계획하는 사람, 정책을 만드는 사람, 그 도시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내가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외면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죠.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우리에게 거창한 영웅적 행동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 비극을 단순한 옛날 이야기로 소비하지 말 것”을 조용히 부탁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은 조금씩 다를 것입니다. 도시와 주거 문제를 다룬 다른 문학 작품이나 연구서를 찾아 읽어 보는 일, 재개발 이슈를 다루는 토론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 주변에서 비슷한 상황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일 모두가 이 소설이 던진 질문을 이어 가는 작은 실천이 될 수 있습니다.
마무리 – 문학은 어디까지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한국 산업화의 그늘을 기록한 소설이자, 지금 우리의 도시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이 작품이 위대한 이유는 거창한 해답을 제시해서가 아니라, “성장과 개발의 이면에서 사라진 사람들”을 잊지 않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문학이 당장 제도를 바꾸지는 못할지라도, 독자의 시선을 바꾸고 질문을 남길 수는 있습니다. 그 질문이 모이고 쌓일 때 비로소 사회의 방향도 조금씩 달라지겠죠.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따라 올려다보는 순간, 우리는 우리 시대의 하늘 아래 서 있는 자신의 위치를 다시 한 번 점검하게 됩니다. 그것이 이 소설이 오늘도 읽혀야 하는 가장 큰 이유일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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