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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 고통과 존엄 사이, 박노해의 시선

by 실리뽀 2025. 5. 7.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서평 – 고통과 존엄 사이, 박노해의 시선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는 박노해 시인이 오랜 시간 세계의 고통받는 현장을 직접 걷고 마주한 기록이다. 전쟁과 빈곤, 억압과 절망이 가득한 땅에서도 꺾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사진으로 담았고, 그 위에 시인의 언어로 삶의 의미를 새겼다. 이 책은 단순한 사진집도, 시집도 아니다. 인간을 향한 존중과 연대의 선언이며, 침묵의 현장을 증언하는 하나의 평화 선언문이다.

사진으로 시를 쓰다 –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담은 장면들

책 속 사진은 예술적 미감보다는 진실을 말한다. 잘 꾸며진 장면이나 연출된 구도가 아니다. 아이를 등에 업은 어머니, 폐허 속에서도 웃는 노인, 피 묻은 손을 들어 인사하는 사람들. 모두가 우리가 외면해 온 ‘변방의 진실’이다. 시인은 말한다. “진실은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을 들여다보는 일이야말로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시작”이라고.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시선은 무겁게 발목을 잡는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눈빛에서 희망을 본다. 박노해의 사진은 절망을 찍는 것이 아니라, 절망 속에서도 살아가려는 생명력의 고귀함을 드러낸다.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텍스트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잠시 귀 기울이는 일이다.

시는 왜 고통의 땅에서 탄생하는가

이 책에 수록된 짧은 시들은 박노해 특유의 언어로, 투박하면서도 명징하다. 시인은 거창한 형이상학이나 이상을 말하지 않는다. 한 줄의 말로 인간의 품격을 복원한다. “너의 고통이 나의 삶을 흔들게 하라”는 문장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처럼 다가온다. 독자는 자신의 일상을 돌아보게 되고, 작고 사소한 감사의 순간들을 새삼스레 되새긴다.

읽는 사람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으로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는 이 책을 읽는 이에게 새로운 감각을 요구한다. 말과 글이 아니라 ‘응시’와 ‘경청’의 자세를. 이 책은 독자를 독서의 자리에 머물게 하지 않는다. 현장의 소리와 냄새, 체온까지 전달해 준다. 그리고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보고 있는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세상을 바꾸는 일은 거대한 권력이 아닌, 작은 공감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이 책은 증명한다.

결론: 우리는 서로의 이름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는 삶의 태도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삶” 그 자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살아내고 있다. 우리가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 그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박노해 시인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는 불편하지만, 동시에 아름답다. 그 세계를 함께 바라보며, 더 나은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