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왕 되기 프로젝트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진화의 새로운 시각

by 실리뽀 2025. 10. 14.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유전자라는 렌즈로 다시 보는 인간의 얼굴

1. “인간은 유전자의 운반체다?”라는 도발적인 문장

처음 『이기적 유전자』를 펼치면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건 다소 불편한 전제입니다. “우리는 모두 유전자를 실어 나르는 운반체에 불과하다.” 마치 인간의 존엄을 축소하는 것처럼 들리는 이 한 문장 때문에, 이 책을 “냉정한 생물학 책”으로 오해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읽고 나면 오히려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이런 프로그램을 알고도 어떻게 살 것인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단순히 유전자의 힘을 과시하는 책이 아니라, 진화의 메커니즘을 이해한 뒤 더 자각적으로 살아가게 만드는 일종의 사고 실험 안내서에 가깝습니다.

출처: 올유문화사

2. 유전자 중심 진화론 – 진화의 주인공을 바꾸다

다윈 이후의 진화론은 오랫동안 “개체”나 “종”을 중심으로 설명되어 왔습니다. 강한 개체가 살아남고, 환경에 잘 적응한 종이 번성한다는 식이었죠. 도킨스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진화의 진짜 주인공은 개체도, 종도 아닌 유전자”라고 주장합니다.

그의 관점에서 유전자는 세대를 거듭해 복제되며, 자신을 실어 나를 수 있는 몸(개체)을 만들고 조종하는 “프로그램”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특정 상황에서 공포를 느끼고, 사랑에 빠지고, 자식을 지키기 위해 몸을 던지는 것까지, 모두 유전자가 더 오래, 더 많이 복제되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설계해 온 전략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관점은 처음에는 다소 차갑게 느껴지지만, 한 번 이 렌즈를 받아들이고 나면 인간과 동물의 행동이 전혀 다른 패턴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왜 우리는 가족에게 더 관대할까?”, “왜 완전히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도 있을까?” 같은 질문들이 새로운 방향으로 열립니다.

3. “이기적 유전자”가 어떻게 이타성을 만들어내는가

제목만 보면 『이기적 유전자』는 “이기적으로 살아라”는 메시지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킨스가 말하는 이기심은 개체가 아닌 유전자 수준의 이기성입니다. 유전자는 자신이 많이, 오래 복제되기 위해 행동 전략을 설계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 전략이 항상 “개체의 이기적인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이타적인 행동이 유전자의 생존에 유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자식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행동, 친족끼리 서로를 지키는 본능,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집단을 보호하는 행동은 단기적으로는 손해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그들의 유전자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도킨스는 이러한 현상을 통해 “이타성은 선의의 기적이 아니라, 진화가 만들어낸 정교한 전략일 수 있다”는 통찰을 보여줍니다. 이 관점으로 주변을 바라보면, 회사에서 서로 돕는 동료,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부모, 때로는 타인을 위해 시간과 자원을 내어주는 우리의 행동까지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4. 유전자에서 밈(Meme)으로 – 문화도 진화하는가

『이기적 유전자』가 지금도 자주 언급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밈(Meme)” 이론 때문입니다. 유전자가 생물학적 정보의 복제 단위라면, 밈은 인간 사회에서 아이디어와 문화가 복제·전파되는 단위입니다.

밈은 특정 유행어, 종교, 정치적 신념, 어떤 스타일의 옷차림, 심지어 하나의 인터넷 짤방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머리에서 머리로 옮겨 다니며 살아남으려는 정보의 조각들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인터넷 밈(meme)”이라는 단어가 바로 이 개념에서 파생되었지요.

SNS에서 하루 만에 전 세계로 퍼지는 챌린지 영상, 특정 정치 구호가 빠르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현상 역시 밈의 관점에서 보면 “어떤 정보가 복제에 유리한 형질을 가졌는가”라는 질문으로 풀어볼 수 있습니다. 단순하고 기억하기 쉬운 문장, 강렬한 이미지, 분노와 웃음을 자극하는 메시지가 왜 그렇게 잘 퍼지는지 이해하는 데 도킨스의 밈 이론은 여전히 강력한 도구가 됩니다.

5. 오해와 한계 – “그러면 다 유전자 탓인가요?”

『이기적 유전자』를 둘러싼 대표적인 오해는 “인간은 어차피 유전자에 종속된 존재이니, 도덕도 자유의지도 다 환상 아니냐”는 식의 해석입니다.

하지만 도킨스가 강조하는 지점은 조금 다릅니다. 그는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달리 자신의 프로그램을 인식할 수 있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유전자가 우리에게 특정 본능과 성향을 심어주었다 하더라도, 그 사실을 이해하고 나면 오히려 그 프로그램에 저항하거나 조정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깁니다.

쉽게 말해, “나는 왜 이렇게 반응하는가?”를 알게 되는 순간, 그 반응을 그대로 따르지 않을 선택지가 생기는 것입니다. 진화론이 “모든 것을 유전자 탓으로 돌려라”가 아니라, “내 안에 어떤 힘들이 작용하고 있는지 알고, 더 자각적으로 선택하라”는 메시지로 읽힐 수 있는 이유입니다.

6. 이 책이 내 삶과 관계를 보는 방식을 바꿔준 점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나면 일상의 많은 장면들이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아이를 위해 밤을 새우는 부모의 모습, 손해 보면서도 타인을 돕는 사람, “우리 편”에게 유난히 관대한 집단의 심리까지.

이 책은 그런 모습들을 낭만적으로만 보지 않게 합니다. 동시에 냉정하게만 보지도 않게 합니다. “아, 우리 안에는 이렇게 오래된 프로그램이 함께 작동하고 있었구나.” 이 깨달음은 때로 위안이 되기도 하고, 나와 타인을 조금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유전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경험은, 인간을 작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을 “사유하는 존재”로 다시 세우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7. 이런 분께 『이기적 유전자』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 진화론이 궁금하지만,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분
  • 협력·이타성·가족애 같은 감정을 과학의 언어로도 이해해 보고 싶은 분
  • 인터넷 밈과 디지털 문화가 왜 그렇게 빨리 퍼지는지 궁금한 분
  • 인간 행동의 밑바닥에 어떤 “프로그램”이 깔려 있는지 알고 싶은 독자

8. 마무리 – 유전자의 이야기이자, 인간 사유의 이야기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생물학 책이면서 동시에 인간학 책입니다. 유전자의 관점에서 생명을 설명하려 하지만, 결국 마지막 장을 덮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우리입니다.

책을 덮고 나면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내 행동은 어디까지가 유전자의 전략이고,
어디서부터가 ‘나’의 선택일까?”

이 질문에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유전자의 운반체로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기적 유전자』는 유전자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인간 사유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