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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왕 되기 프로젝트

양귀자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 금지된 욕망과 억압된 삶

by 실리뽀 2025. 10. 14.

양귀자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 금지된 욕망을 통해 나를 다시 묻는 시간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제목 한 줄만으로도 이 소설의 공기는 전해집니다. 욕망을 품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던 시대, 한 여성의 내면에서 조용하지만 치열하게 타오르던 저항의 불씨. 양귀자의 장편소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은 바로 그 불씨를 끝까지 응시하는 작품입니다.

1. 양귀자 문학과 80–90년대 한국 사회, 그 사이에 선 한 여성

1980~1990년대 한국은 민주화와 산업화가 동시에 밀려오던 시기였습니다. 거리에서는 독재에 맞선 투쟁이 벌어졌지만, 집 안의 질서는 여전히 견고한 가부장제에 묶여 있었습니다. 밖에서는 “자유”를 외치면서도, 안에서는 “착한 아내, 좋은 며느리”를 요구하던 모순된 시대였죠.

양귀자는 이런 시대적 균열을 누구보다 예리하게 포착해 온 작가입니다. 『원미동 사람들』이 서민들의 일상 속 슬픔과 유머를 담아냈다면,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은 한 여성의 내면을 깊이 파고들어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무게를 정면으로 마주합니다. 한국 여성문학을 이야기할 때 이 작품이 빠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출처: 쓰다

2. 평온해 보이는 일상, 그 속에서 서서히 금이 가는 삶

소설 속 주인공의 삶은 겉으로 보면 아주 평범합니다. 결혼을 했고, 가족이 있으며, 사회가 말하는 “정상적인 여성의 삶” 안에 놓여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폭력도, 드라마틱한 사건도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이 작품의 무게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일상” 속에서 서서히 쌓여갑니다.

그러나 독자는 곧 알게 됩니다. 그 평온함이야말로 가장 견고한 감옥이었다는 사실을요. 주인공은 아내, 어머니, 딸, 며느리라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자신의 이름과 욕망을 점점 잃어갑니다. 타인의 기대를 충실히 채울수록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밀려납니다.

이 소설의 긴장감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소리를 지르지도, 문을 박차고 나가지도 않지만, 주인공의 내면에서는 매 순간 작은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것. 양귀자는 그 균열의 소리를, 아주 조용한 문장들로 끝까지 따라갑니다.

3. “금지된 것”을 소망한다는 것 – 부도덕이 아닌 생존의 욕망

제목 속 “금지된 것”은 단순한 일탈이나 불륜의 기호가 아닙니다. 양귀자가 그려내는 욕망은 훨씬 더 근본적인 것, “내 삶을 스스로 선택할 권리”에 가깝습니다.

주인공이 마음속으로 소망하는 것들은 과연 그렇게 큰 죄일까요? 사랑받고 싶다, 일하고 싶다, 혼자가 되고 싶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다….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그 욕망들은 너무도 인간적이고, 너무도 사소합니다. 그러나 가부장제 사회는 이 소망들에 “이기적이다”, “여자답지 못하다”라는 낙인을 찍어버립니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 “금지”는 법이나 규칙의 수준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까지 씌워버린 금기를 의미합니다. “나는 이 정도는 바라고 살면 안 되는 사람이지”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살아온 세월. 양귀자는 그 자기검열의 층을 한 겹씩 벗겨내면서, “우리는 언제부터 자유를 꿈꾸는 것조차 두려워하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4. 보이지 않는 가부장제 – 폭력이 ‘없어 보이는’ 방식으로 작동할 때

이 작품이 인상적인 이유는, 주먹이 오가거나 고성이 오가는 장면보다 훨씬 조용한 방식의 폭력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너를 위해서야”, “가정이 먼저지”, “그게 여자한테 좋은 거야” 같은 말들은 겉으로는 배려와 조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범위를 좁혀버리는 장치로 작동합니다. 주인공은 이런 말들에 수없이 노출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포기하는 법”을 먼저 배우게 됩니다.

양귀자는 가정, 혼인 제도, 친족 관계, 일터 등 우리가 너무 익숙해서 문제 삼지 않았던 공간들을 하나하나 비추며, 그 안에 스며든 가부장제의 얼굴을 드러냅니다. 이 소설의 인물들은 크게 소리치지 않지만, 그 침묵 속엔 “같이 살기 위해 나를 지워버리는” 수많은 선택들이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5. 양귀자의 문장 – 절제된 언어로 버티는 여성들의 초상

양귀자의 문장은 과장되지 않습니다. 화려한 수사 대신 담담한 진술을 택하고, 감정을 직접 설명하기보다는 상황과 표정, 작은 몸짓들을 통해 내면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다 보면 “이 인물들이 내 주변에 실제로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자주 받게 됩니다. 어쩌면 나의 어머니, 나의 친구, 그리고 바로 나 자신일지도 모르는 얼굴들.

특히 인상적인 건, 주인공이 끝내 무너질 듯하면서도 완전히 부서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녀의 삶은 누가 보아도 불공평하지만, 소설은 그녀를 희생양이나 순교자로 미화하지 않습니다. 대신 “어떤 삶은, 버티는 것만으로도 이미 저항이다”라는 사실을 조용히 보여줍니다.

6. 2025년에 다시 읽는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많은 것이 달라진 것처럼 보이는 지금도, 여전히 누군가는 경력 단절과 돌봄 노동 사이에서, “좋은 엄마”와 “나 자신” 사이에서 매일 줄타기를 합니다. 법과 제도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남자는 이렇게, 여자는 저렇게 살아야 한다”는 오래된 문장은 여전히 여러 형태로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절대로 과거형으로만 읽히지 않습니다. 주인공이 품었던 “금지된 욕망”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다른 얼굴로 찾아옵니다. 하고 싶지만 감히 말하지 못했던 진로, 끝내 꺼내지 못한 이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삶의 재시작에 대한 꿈….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은 그런 우리 안의 눌린 마음에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말을 겁니다. “그 욕망이 정말 그렇게까지 금지되어야 하는가?”

7. 이런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 한국 여성문학, 특히 80~90년대 현실을 담은 장편소설을 읽어보고 싶은 분
  • 가부장제와 젠더 문제를 이론이 아닌 서사로 체감하고 싶은 독자
  • “좋은 사람”으로 살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해 왔다고 느끼는 사람
  • 양귀자의 다른 작품(『모순』, 『원미동 사람들』 등)을 좋아했고, 더 깊은 얼굴을 보고 싶은 독자

이 작품은 가볍게 읽고 덮어버리기 어려운 소설입니다. 속도가 빠르지 않은 대신, 읽는 내내 자기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8. 마무리 – “나는 무엇을 스스로 금지하며 살아왔는가”

양귀자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은 단지 한 여성의 불행을 관찰하는 소설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얼마나 자연스럽게 자신의 욕망과 목소리를 금지해 왔는지를 비추어 보는 거울입니다.

소설을 덮고 나면, 문득 이런 질문이 마음에 남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욕망들을 ‘나답지 않다’는 이유로 묻어버려 왔는가?”
“그 욕망들을 조금만 더 솔직하게 마주해도 괜찮지 않을까?”

금지된 것을 소망한다는 건, 어쩌면 나 자신으로 살고 싶다는 가장 인간적인 고백일지도 모릅니다. 이 소설은 그 고백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당신이 소망하는 그 삶 역시, 누군가의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의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