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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왕 되기 프로젝트

채식주의자: 정체성, 욕망, 사회의 기대

by 실리뽀 2025. 10. 12.

한강 『채식주의자』 리뷰 – 몸으로 말하는 자유, 침묵으로 하는 저항

서론: 불편한데도 끝까지 읽게 되는 소설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는 읽는 내내 어딘가 불편합니다. 대단한 폭언이나 격한 장면이 아니라, 차갑도록 절제된 문장 속에서 조금씩 스며 나오는 불안과 긴장 때문입니다. 인물들은 크게 소리치지 않지만, 그들의 시선과 침묵은 오래도록 마음을 붙잡습니다.

표면적으로 이 소설은 “어느 날 갑자기 고기를 거부한 한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우리는 알게 됩니다. 이것은 단순한 식습관의 변화가 아니라, 자기 몸을 둘러싼 모든 규범과 폭력을 향한, 조용하지만 단호한 선언이라는 사실을요.

출처: 창비

채식 선언, 일상의 균열이 되는 한 문장

주인공 영혜는 어느 날 꿈속에서 피와 살, 고기에 대한 강렬한 불쾌감을 경험한 뒤 더 이상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평범한 직장인, 평범한 아내로 살던 그녀의 이 한마디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파장을 일으킵니다.

누군가의 식습관 변화는 사실 그리 대단한 사건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영혜의 선택은 가족과 사회가 보기에 “이해할 수 없는 일탈”이 됩니다. 남편은 아내의 변화를 불편해하고, 가족은 그녀를 예전의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리려 합니다.

이 지점에서 독자는 묻게 됩니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개인의 선택이고, 어디부터가 사회의 문제일까?” 영혜의 채식 선언은 그 경계를 시험하는 첫 번째 균열입니다.

가족과 사회가 말하는 ‘정상’의 폭력

영혜의 주변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그녀를 ‘교정’하려 듭니다. 남편은 회사 생활과 체면을 이유로, 부모는 가정의 평판과 전통을 이유로, 그녀의 선택을 비이상적인 것으로 규정합니다.

문제는 그들이 내세우는 이유가 대부분 사랑과 책임, 걱정의 언어를 빌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너를 위해서 그러는 거야”, “이게 너를 위한 길이야”라는 말은 사실상 “너는 네 몸과 삶의 주인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로 바뀝니다.

식탁 위 갈등은 단순한 취향 차이의 싸움이 아닙니다. 한강은 이 긴장된 장면들을 통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상’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모두가 익숙한 방식을 따르라는 압박, 그 틀에서 벗어나는 순간 쏟아지는 시선과 간섭. 영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녀의 침묵은 순응을 거부하는 가장 강한 거절로 읽힙니다.

욕망과 정체성, 그리고 몸으로 하는 말

『채식주의자』는 단순히 채식이라는 선택을 넘어, 욕망과 정체성, 몸의 주권을 섬세하게 탐구하는 소설입니다. 영혜는 육식을 멈추고 점점 더 식물에 가까운 존재가 되고 싶어 합니다. 이 변화는 자신을 둘러싼 폭력적인 세계에서 벗어나 자연에 가까운 상태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본능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소설에서 영혜의 목소리는 오히려 적게 들린다는 것입니다. 대신 그녀의 몸이 말합니다. 먹지 않는 몸, 거부하는 몸, 가늘어지는 몸, 식물처럼 햇빛을 향해 서려는 몸. 한강은 인물의 내면을 화려한 감정 묘사가 아니라 행동과 이미지로 보여 줍니다.

영혜를 둘러싼 인물들은 각자의 욕망을 그녀의 몸에 투사합니다. 남편에게 그녀는 “무난한 아내”여야 했고, 가족에게는 “체면을 지켜주는 딸”이어야 했으며, 또 다른 인물에게는 “예술적 욕망을 실험할 도화지”처럼 취급되기도 합니다. 그 속에서 영혜는 말 대신 몸으로 저항합니다. 더 이상 타인의 욕망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마지막이자 유일한 언어처럼요.

침묵과 광기 사이 – 영혜가 끝까지 지키려 한 것

많은 사람들에게 영혜는 이해할 수 없는 인물로 보일 것입니다. 그녀의 선택은 비합리적으로 보이고, 행동은 종종 ‘이상하다’, ‘무섭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하지만 소설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광기’라고 부르는 것이 어쩌면 끝까지 자신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혜는 주변의 시선을 설득하려 하지 않습니다. 변명도, 장황한 설명도 없습니다. 대신 자기 안에서만 통용되는 어떤 기준을 끝까지 붙들고 살아가려 합니다.

한강은 이 과정을 통해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얼마나 모호한지, 그리고 그 경계를 누가, 어떤 기준으로 정하는지 질문합니다. 결국 광기를 선포하는 쪽은 언제나 다수의 세계이며, 소수의 선택과 다른 몸은 쉽게 배제의 대상이 됩니다.

오늘의 우리에게 『채식주의자』가 던지는 질문

『채식주의자』는 출간 이후 한국 문학 안팎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입니다. 여성의 몸과 폭력, 가부장제, 욕망과 자유를 다루는 방식 덕분에 한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 중 하나로 자주 언급되곤 합니다.

이 작품이 지금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영혜의 이야기가 특별한 소수의 문제가 아니라 “조용히 순응하기를 요구받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이 정도는 이해해 주는 게 예의지”, “다들 이렇게 사니까 나도 그냥 따라간다”는 말로 스스로를 설득하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외모, 식습관, 결혼, 출산, 직장 생활 등 삶의 많은 선택들이 여전히 타인의 기준과 시선을 의식하며 결정됩니다.

『채식주의자』는 그 속에서 조용히 묻습니다. “당신의 몸과 삶은 누구의 것인가?” “당신은 진짜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가?” 이 질문은 소설을 덮은 뒤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마무리: 자유를 향한 침묵의 선언

영혜의 침묵은 두려움이 아니라,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한 마지막 방어선처럼 느껴집니다. 세상이 정해 놓은 “정상”의 범주 안으로 다시 들어갈 것을 요구받을 때, 그녀는 대답 대신 조용히 한 발 물러납니다. 타인의 언어를 거부하고, 자기 몸으로만 말을 이어가는 방식으로요.

한강의 문장은 차갑지만 섬세합니다. 과장된 설명 없이도 인물의 감정과 공기는 또렷하게 전해지고, 독자는 때로 숨이 막히는 듯한 밀도로 영혜를 둘러싼 세계를 마주하게 됩니다.

『채식주의자』는 단순한 소설을 넘어, 우리 각자 안에 숨어 있는 자유의 얼굴을 비추는 거울 같은 작품입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영혜에게 던졌던 질문이 조용히 나 자신을 향해 되돌아옵니다. “나는 지금, 나답게 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