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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왕 되기 프로젝트

한강 작가의 문학과 한국 현대사 – 침묵으로 저항한 작가의 언어

by 실리뽀 2025. 10. 14.

한강 문학과 한국 현대사 – 노벨문학상이 비춘 상처의 기록과 침묵의 언어

서론: 노벨문학상 이후, 왜 다시 한강을 읽게 되는가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 이후, 한강의 이름은 더 이상 한국 문학 애호가들만의 것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문학을 진짜로 이해하려면, 화려한 수상 이력보다 먼저 한국 현대사가 남긴 상처를 떠올려야 합니다. 전쟁과 분단, 국가 폭력과 일상적 억압이 뒤섞인 이 땅에서, 한강은 고통을 직접 외치기보다 침묵과 여백으로 기록해 온 작가입니다.

제가 처음 한강을 읽었던 건, 교과서에서 한 줄로 배웠던 “광주”를 하나의 목소리가 아니라 수많은 몸과 얼굴로 다시 마주하고 싶을 때였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한강의 소설은 역사를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 역사를 “견디게 만드는” 문학에 가깝다는 사실을요.

1. 고요 속의 절규 – 한강 문학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

한강의 문장은 눈에 띄게 조용합니다. 폭력을 다루면서도 날선 구호나 직접적인 규탄 대신, 잘라낸 장면, 말하지 못한 대사, 멈춘 시선으로 인물의 내면을 드러냅니다. 이 고요함은 단순한 스타일이 아니라, 말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시대를 통과한 세대의 언어에 가깝습니다.

그녀의 인물들은 거대한 권력과 정면으로 맞붙어 “승리”하는 영웅이 아닙니다. 대신 끝까지 살아남아 기억하고, 죄책감을 품고, 어떤 방식으로든 “사람으로 남으려는 몸부림”을 보입니다. 그래서 한강의 소설을 읽을 때 우리는 줄거리를 따라가기보다, 인물의 시선이 머무는 곳과 그녀가 반복해서 끌어오는 이미지에 주목하게 됩니다.

2. 《소년이 온다》 – 광주와 국가 폭력이 남긴 집단의 상처

한강 문학과 한국 현대사를 이야기할 때 《소년이 온다》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작품은 1980년 광주라는 특정 사건을 다루지만, 단일한 화자 대신 여러 인물의 목소리가 교차하는 구조를 통해 하나의 도시, 한 세대의 트라우마를 입체적으로 드러냅니다.

죽은 이를 수습하는 이, 곁에서 살아남은 친구, 사건 이후를 살아야 했던 이들까지. 모두가 제각각의 방식으로 “그날”을 품고 살아갑니다. 한강은 그들을 영웅으로 신격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공포, 죄책감, 부끄러움, 잊고 싶은 욕망까지 있는 그대로 비춥니다. 그 결과 이 소설은 특별한 영웅담이 아니라, 폭력 앞에 서 있던 보통 사람들의 기록이 됩니다.

팬데믹을 겪은 이후 우리가 전염병 서사인 《페스트》를 새롭게 읽게 되었듯, 한국 사회는 지금 《소년이 온다》를 통해 “광주”를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은 질문으로 다시 마주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날 이후, 무엇을 달라지게 했는가?” 이 물음은 여전히 현재형입니다.

3. 《채식주의자》 – 몸으로 말하는 침묵, 일상 속 내면의 폭력

《소년이 온다》가 국가와 집단의 폭력을 정면으로 바라본다면, 《채식주의자》는 훨씬 더 가까운 자리, 가정과 일상 속에서 “내면화된 폭력”을 드러내는 작품입니다. 육식을 거부하는 한 여성의 이야기에서 출발하지만, 이 선택은 단순한 식습관의 변화가 아닌 “몸을 통해 세상의 규범 전체를 거부하는 행동”으로 읽힙니다.

영혜는 큰 소리로 저항하지 않습니다. 대신 말수를 줄이고, 식탁에서 고기를 치우고, 마침내 자신을 점점 식물에 가까운 존재로 만들어 갑니다. 그녀의 변화는 주변 사람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이상 행동”으로 보이지만, 독자는 그 침묵 속에서 가부장제, 가족, 회사, 일상적 폭력이 한 사람의 몸에 새겨낸 흔적을 읽게 됩니다.

한강은 이 작품에서 한국 사회의 억압을 직접 설교하지 않습니다. 대신 한 여성의 몸이 어떻게 무너지고, 또 다른 방식으로 다시 태어나는지를 통해, “살아남는다는 것”의 윤리를 묻습니다. 《소년이 온다》가 외부의 폭력을 기록한다면, 《채식주의자》는 우리 안에 이미 스며든 폭력을 해부하는 내면 혁명 소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4. 상징과 이미지로 읽는 한강 – 피, 식물, 침묵의 반복

한강의 소설을 몇 편만 이어서 읽어도, 반복해서 눈에 들어오는 이미지들이 있습니다. 피, 식물, 물, 나무, 그리고 말을 잃어버린 인물들. 이 상징들은 개별 작품을 넘어, ‘한국 현대사를 통과한 몸’의 공통된 기억처럼 느껴집니다.

피는 폭력의 흔적이자, 동시에 생명의 증거입니다. 《소년이 온다》에서의 피는 국가 폭력의 잔혹함을 보여주지만, 《채식주의자》에서의 피는 “더 이상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자신을 다른 존재로 바꾸려는 몸부림의 흔적처럼 다가옵니다. 피는 파괴와 재생을 동시에 상징하는 양가적인 이미지입니다.

식물과 나무 역시 중요합니다. 누군가는 나무가 되고 싶어 하고, 누군가는 나무 아래 쓰러져 쉬고 싶어 합니다. 뿌리를 내리고, 흔들리면서도 쉽게 뽑히지 않는 존재. 이는 폭력의 시대를 지나온 사람들이 “인간으로 버티는 방법”에 대한 은유처럼 읽힙니다.

그리고 침묵. 한강의 인물들은 자주 말을 잃거나, 말을 아끼거나, 말을 포기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내성적인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말하는 것이 위험하거나 불가능했던 시대를 통과한 몸의 기억입니다. 침묵으로밖에 말할 수 없었던 세대를 대신해, 한강은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침묵의 기록”을 남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5. 오늘 우리가 한강을 읽어야 하는 이유

교과서로만 한국 현대사를 배운 세대에게, 한강의 작품은 “사건명”이 아닌 “사람의 얼굴”을 보여줍니다. 광주는 더 이상 시험 문제 속 연도가 아니라, 누군가의 몸과 목소리, 끝내 치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다가옵니다.

한편, 《채식주의자》를 통해 우리는 특별히 극단적인 사람만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누구나 보이지 않는 폭력에 노출되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이 성별일 수도, 가난일 수도, 가족 구조일 수도 있습니다. 한강의 소설은 그 폭력을 “누구의 잘못”으로 단순하게 돌리지 않고, 어떻게 함께 감당하고 변화시킬 것인가를 묻습니다.

그래서 한강을 읽는다는 것은 한국 현대사에 대한 지식을 늘리는 일이 아니라,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타인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는 연습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 우리가 쓰는 언어, 우리가 침묵했던 순간들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독서 경험입니다.

6. 맺음말 – 침묵하지 않기 위해 읽는다는 것

한강의 문학은 거창한 희망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대신, 부서진 몸과 상처 난 기억이 어떻게든 서로를 찾아가 손을 잡는 순간을 포착합니다. 《소년이 온다》의 광주도, 《채식주의자》의 영혜도, 모두 이 땅을 살아온 사람들의 얼굴을 닮았습니다.

노벨문학상은 한강이 세계 문학사 속에 자리 잡았음을 확인해 주었지만, 그녀의 소설이 진짜로 힘을 갖는 순간은 우리가 책을 덮은 뒤,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입니다. 어떤 말 앞에서 침묵할지, 어떤 장면 앞에서 눈을 돌리지 않을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그 순간 말입니다.

문학은 역사를 바꾸지 못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최소한, 잊히지 않게 할 수는 있습니다. 한강의 언어는 바로 그 일을 합니다. 폭력의 시대를 기억하고, 다시는 같은 상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그녀의 소설을 읽습니다. 그것이, 침묵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한 가장 조용하지만 단단한 시작일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