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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왕 되기 프로젝트

김영하 『살인자의 기억법』 : 망각의 안개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 본성의 그림자

by 실리뽀 2025. 10. 12.

『살인자의 기억법』 – 기억의 안개 속에서 인간 본성을 마주하다

김영하의 장편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연쇄살인범의 시선을 통해 기억과 망각, 죄와 구원의 경계를 탐구한 작품입니다. 스릴러의 긴장감 속에서도 인간의 본성과 도덕적 양심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1. 기억과 망각의 경계 – 인간의 진실을 향한 불안한 여정

주인공 김병수는 한때 연쇄살인을 저질렀던 남자입니다. 이제는 알츠하이머에 걸려 과거의 기억이 하나둘 지워지고 있습니다. 병수는 자신의 딸 은희를 위협하는 남자 민태주를 만나며, 잊힌 본능이 다시 깨어납니다. 그러나 그가 본 것이 진실인지, 망상인지 점점 알 수 없게 되면서 독자는 혼란의 미로 속으로 빠져듭니다.

작가는 “기억을 잃는다는 것”을 단순한 질병이 아닌, 인간 존재의 근원적 불안을 드러내는 장치로 활용합니다.

2. 줄거리 요약 – 흐릿한 의식 속 마지막 사투

병수는 평범한 노인으로 살기를 원하지만, 딸의 연인이 또 다른 살인자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그를 다시 자극합니다. 그는 딸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 ‘사냥’을 결심하지만, 기억의 조각이 점점 부서지면서 과거와 현재의 경계가 사라집니다. 독자는 그의 불완전한 인식 속에서 “무엇이 진실인가?”라는 질문을 함께 붙잡게 됩니다.

3. 1인칭 시점의 몰입감 – 의식의 파편 속으로

이 작품은 병수의 1인칭 내면 독백으로 전개됩니다. 단절된 문장, 반복되는 기억의 오류, 불안정한 리듬은 알츠하이머의 혼란을 실감나게 재현합니다. 독자는 병수의 시선 속에서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는 경험을 하며, 그의 불완전한 진실 속으로 함께 끌려갑니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독자를 단순한 관찰자가 아닌, 병수의 ‘공동 체험자’로 만들어, 스릴러의 몰입감을 극대화합니다.

4. 기억과 죄, 그리고 구원 – 인간의 본성에 대한 철학적 질문

김영하는 ‘기억’이라는 주제를 통해 인간의 윤리적 책임을 묻습니다. 병수는 죄책감과 구원 사이에서 흔들리며, “죄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 죄는 여전히 존재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과 마주합니다.

이 작품은 결국 인간의 악을 심판하지 않고, 그것을 이해하고 성찰하려는 시도로 읽힙니다. 망각 속에서조차 남아 있는 인간성의 잔향은 독자에게 서늘한 감정의 울림을 남깁니다.

5. 인상적인 문장 – 악의 본성을 드러내는 한 줄

“살인은 습관이다. 나쁜 습관은 고치기 어렵다. 그러나 더 어려운 건, 그 나쁜 습관이 사라졌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 문장은 인간의 본성에 잠재된 어둠을 상징합니다. 병수의 내면은 단순한 범죄자의 심리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존재하는 악의 가능성을 드러냅니다. 작가는 독자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진실을 기억할 용기가 있는가?”

6. 영화와 원작 – 외형의 스릴러, 내면의 철학

2017년 개봉된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은 배우 설경구의 강렬한 연기로 주목받았습니다. 영화는 서사적 긴장과 사건 전개에 집중한 반면, 원작은 인간의 의식과 도덕적 해석에 더 깊게 천착합니다. 두 매체의 차이를 통해 독자는 시각과 내면의 거리감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습니다.

7. 결론 – 기억을 잃어도 인간은 남는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단순한 범죄소설을 넘어,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철학적 심리극입니다. 기억의 소멸은 곧 자아의 해체이지만, 그 속에서도 인간은 여전히 스스로를 판단하고 구원하려는 의지를 보입니다.

책을 덮고 나면, 우리는 질문하게 됩니다. “기억을 잃은 인간은 여전히 자신일까?” 김영하는 이 질문을 통해 인간이 가진 마지막 본능—‘성찰’—을 이야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