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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왕 되기 프로젝트

알랭 드 보통 『불안』 – 타인의 시선 속에서 나로 사는 연습

by 실리뽀 2025. 11. 14.

알랭 드 보통 『불안』 – 타인의 시선 속에서 나로 사는 연습

서론: 이유 없이 가라앉는 날, 꺼내 들게 되는 책

별일 없는 하루인데도 마음이 자꾸 가라앉을 때가 있습니다. 일을 그럭저럭 해냈고, 주변 사람들과 큰 갈등도 없는데, 잠깐 멍하니 앉아 있다 보면 ‘이대로 괜찮은 걸까?’ 하는 생각이 스며듭니다. 뭔가 더 잘해야 할 것 같고, 뒤처지는 것 같고, 설명하기 힘든 초조함이 가슴 근처를 맴돌죠.

알랭 드 보통의 책 『불안』은 바로 그 막연한 마음을 정면에서 응시하는 책입니다. 이 책이 말하는 ‘불안’은 병원 진단명으로서의 불안장애가 아니라, “남들처럼 성공해야 할 것 같고,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고, 인정받고 싶은데 늘 부족한 것 같은 느낌”에 더 가깝습니다. 저자는 이 불안을 단순히 “약한 마음”으로 취급하지 않고,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거의 모든 사람이 겪는 구조적인 감정으로 바라봅니다.

그래서 『불안』은 위로의 문장을 몇 줄 던져주는 셀프 헬프 서적이 아니라,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불안한가?”라는 질문을 철학과 역사, 예술을 빌려 차분히 탐색하는 인문 에세이에 가깝습니다.

1. 알랭 드 보통이 바라본 현대인의 불안

알랭 드 보통은 우리가 느끼는 많은 불안이 결국 “지위에 대한 불안,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서 출발한다고 말합니다. 회사에서의 직급, 연봉, 집의 크기, 결혼 여부, 자녀의 스펙까지 우리의 일상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 요소가 “너는 얼마나 올라갔니?”라는 기준으로 평가되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 인상적인 점은, 저자가 불안을 단순히 개인의 성격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불안의 근원을 몇 가지 키워드로 나눠 살펴보는데, 그 중 특히 공감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지점들입니다.

1) 타인의 시선과 비교의 덫

SNS 타임라인을 내리다 보면 쉽게 이런 생각이 듭니다. “다들 저렇게 잘 사는 것 같은데, 나만 제자리인 것 같아.” 사실 알고 보면 그들도 힘들고, 사진 바깥에는 어수선한 현실이 있겠지만, 우리는 화면에 보이는 ‘하이라이트’만 보고 자신을 평가해버립니다.

알랭 드 보통은 이처럼 타인의 기준에 내 삶을 계속 갖다 대는 태도가 불안을 끝없이 자극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완전히 남의 시선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나는 어떤 삶을 좋은 삶으로 보는가?”라는 자기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흔들림이 덜하다고 조언합니다.

2) 성공해야만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압박

현대 사회는 “열심히 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겉으로만 보면 희망적인 메시지 같지만, 그 말에는 여전히 말하지 않은 전제가 숨어 있습니다. “그러니 성공하지 못했다면, 그건 네 탓이다.”

예전에는 태어난 집안과 신분이 삶의 미래를 거의 결정했다면, 지금은 모두가 “기회는 평등하다”고 믿는 대신 끊임없는 자기 검열과 불안을 떠안게 되었습니다. 알랭 드 보통은 이런 사회구조가 개인이 느끼는 실패감과 열등감을 훨씬 더 날카롭게 만든다고 지적합니다.

3) 사랑과 관계 속에서의 불안

사랑도 예외는 아닙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순간, 우리는 동시에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품게 됩니다. 메시지 답장이 늦어지는 것만으로도 온갖 상상을 하며 마음이 요동치곤 하죠.

저자는 사랑이 주는 기쁨과 함께 따라오는 이 불안을 없애야 할 것이 아니라, 관계가 깊어질수록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으로 봅니다. 중요한 것은 불안이 생겼다는 사실에 당황해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래, 내가 그만큼 상대를 소중히 여기고 있구나”라고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2. 철학이 알려주는 불안과 거리 두기

『불안』의 또 다른 매력은,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철학자의 언어로 번역해준다는 점입니다. 알랭 드 보통은 고대 스토아 철학자들의 가르침을 가져와 현대인의 불안을 설명하는 데 활용합니다.

1)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구분하기

스토아 철학자들은 “우리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라”고 말했습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 사회의 기준이 어떻게 변할지는 내가 완전히 통제할 수 없습니다. 반면, 오늘 내가 어떤 시간 사용을 선택할지, 어떤 가치를 우선 순위에 둘지는 나의 선택 영역에 있습니다.

알랭 드 보통은 이 관점을 빌려, “불안의 상당 부분은, 실제로는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에 집착할 때 생긴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불안을 줄인다는 것은 현실을 냉소적으로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에너지를 어디에 쓸지를 조정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2) 실패와 평균에 대한 시선 바꾸기

우리는 실패를 거의 재앙처럼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철학자들의 세계 속에서 실패는, 나를 조금 더 현실적으로 보게 해주는 통과의례에 가깝습니다.

『불안』에 등장하는 여러 예시와 인물들을 따라가다 보면, “평범함”, “중간 정도”에 대한 우리의 편견도 함께 드러납니다. 알랭 드 보통은, 사회가 말하는 특별함에 집착할수록 오히려 자신의 삶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다고 지적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특별한 존재인데, ‘객관적인 기준’이라는 이름으로 그 사실을 스스로 지워버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3. 책을 읽으며 떠오른 오늘의 장면들

『불안』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 삶의 장면들이 떠오릅니다.

회사에서 동기 승진 소식을 들었을 때,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면서도 속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초조함이 밀려왔던 순간. SNS 피드에 올라온 여행 사진, 새 집 인증샷, 자녀 입시 성공 스토리를 보며 “나도 저 정도는 해야 정상인 건가?” 싶었던 마음. 특별히 나쁜 일이 일어난 건 아닌데도 잠들기 전에 ‘내 인생은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 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던 밤들.

알랭 드 보통은 그런 순간들을 “나만의 이상한 문제”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현대 사회라는 구조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미 경험하고 있는 보편적인 불안으로 받아들입니다. 이 관점 전환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가벼워집니다. “아, 이게 나만 이상해서가 아니라, 이런 시대에 살아서 느끼는 감정이구나.”

4. 『불안』이 알려준, 불안과 함께 사는 연습

그렇다면 이 책은 끝에서 우리에게 무엇을 제안할까요? “이런 방법을 쓰면 불안이 완전히 사라진다”라는 기적의 솔루션은 아닙니다. 대신 저는 이 책을 통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연습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1) 나만의 성공 기준 다시 써보기

우리는 너무 자연스럽게 “사회가 말하는 좋은 삶”을 나의 기준처럼 들고 살아갑니다. 좋은 회사, 좋은 집, 안정적인 가정. 물론 이 모든 것은 소중하지만, 그 기준이 모두에게 똑같이 맞는 것은 아닙니다.

『불안』을 읽고 난 뒤, “지금 내 기준으로 보면, 나는 어떤 사람이면 좋을까?”라는 질문을 실제로 적어보는 것도 좋은 연습이 됩니다. 돈이나 직함이 아닌 다른 단어들이 떠오를 수도 있습니다: “내가 소중한 사람들에게 신뢰받는 사람”, “밤에 잠들 때 오늘 하루를 대체로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같은 것들 말입니다.

2) 비교를 멈추기보다, 비교의 방향을 바꾸기

비교를 완전히 멈추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우리는 사회적 존재이고, 다른 사람과 함께 살 수밖에 없으니까요.

다만 비교의 방향을 조금 바꾸는 것은 가능합니다. 타인의 결과와 나를 비교하는 대신,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해 보는 것, “저 사람은 참 열심히 살아가고 있구나” 정도로 타인의 삶을 감탄의 대상으로만 두는 것. 알랭 드 보통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비교를 통해 자신을 괴롭히는 대신, 비교를 나를 조금 더 이해하는 도구로 쓰는 태도를 배우게 됩니다.

3) 불안이 올라올 때 나에게 해줄 말 하나 정해두기

이 책은 직접적인 셀프 토크 문장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읽다 보면 각자에게 필요한 말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지금 이렇게 불안한 건, 내가 제대로 살고 싶어서 그런 거야.” “모두가 나보다 앞서가는 것 같아 보여도, 각자 다른 시간표를 가진 사람들일 뿐이야.”

『불안』은 이런 문장을 머릿속에 하나쯤 품고 일상으로 돌아가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불안이 다시 밀려올 때, 그 책장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조금 더 부드럽게 대하게 만드는 책이지요.

5.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 본 『불안』의 자리

알랭 드 보통은 이미 여러 권의 에세이와 철학서를 통해 사랑, 일, 여행, 철학 등 일상의 많은 주제를 다뤄 왔습니다. 그중에서도 『불안』은 특히 “지위와 인정”에 초점을 맞춘 책으로, 같은 작가의 다른 책들과 함께 읽으면 그의 문제의식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심리학 책들이 구체적인 실천 전략과 사례를 많이 제시한다면, 『불안』은 조금 더 먼 거리에서 우리 삶 전체의 풍경을 비추는 책입니다. 그래서 당장 내일 불안이 싹 사라지지는 않지만, 불안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천천히 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6. 이런 사람에게 특히 추천하고 싶습니다

  • “겉으로 보기엔 잘 지내는데, 마음 한구석이 늘 조급하다”는 생각이 드는 분
  • SNS를 끊고 싶지만 쉽지 않고, 남과의 비교에서 자주 지치는 분
  • 회사·학교·가정이라는 무대에서 계속 “더 나은 나”가 되어야 하는 압박을 느끼는 분
  • 불안을 단순히 없애고 싶은 감정이 아니라, 이해하고 싶다고 느끼는 분

『불안』은 해결책을 명령조로 내리기보다, “이 감정을 이렇게도 바라볼 수 있다”고 조용히 제안하는 책입니다. 그래서 위로를 원하면서도 너무 가벼운 말들에 지쳐 있는 분들에게 더 잘 맞을지도 모릅니다.

마무리 – 불안은 사라지지 않아도, 나를 덜 흔들 수 있다

이 책을 덮고 나서도 불안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미래를 걱정하고, 지금의 선택이 맞는지 불안해할 것입니다.

하지만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은 그 감정을 “없는 게 정상, 생기면 이상한 감정”이 아니라,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데리고 가야 하는 동행자”로 바라보게 만들어요. 불안 때문에 나를 미워하는 대신, 불안을 통해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인지 알아가게 됩니다.

이유 없는 초조함이 자주 찾아오는 요즘이라면, 이 책을 한 번 천천히 읽어 내려가 보길 권합니다. 불안이 완전히 사라지는 대신, 그 감정과 조금은 더 평화롭게 공존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