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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왕 되기 프로젝트

『연을 쫓는 아이』와 『소년이 온다』 – 기억 속의 상처가 만든 인간성의 기록

by 실리뽀 2025. 10. 20.

『연을 쫓는 아이』와 『소년이 온다』 – 죄책감과 기억이 이끄는 두 개의 성장 서사

서로 다른 대륙, 다른 언어, 다른 시대를 배경으로 한 두 소설을 나란히 읽으면 이상한 공명이 일어납니다. 칼레드 호세이니의 『연을 쫓는 아이』와 한강의 『소년이 온다』. 한 작품은 개인의 죄책감과 용서를, 다른 한 작품은 공동체의 기억과 증언을 다루지만, 두 책이 끝내 향하고 있는 곳은 같은 질문처럼 느껴집니다. “우리는 상처를 안고도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가.”

1. 서로 다른 도시, 같은 어둠을 통과하는 두 소년

『연을 쫓는 아이』 속 소년은 전쟁과 분열로 흔들리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자랍니다. 그는 한 번의 선택으로 평생 지워지지 않는 죄책감을 안게 되고, 이후의 삶은 그 상처와 마주하는 과정이 됩니다.

『소년이 온다』의 중심에는 1980년 5월 광주가 있습니다. 국가 폭력 속에서 어린 소년은 누군가를 지키려고, 누군가를 찾아 나섰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합니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삶은 “그날 이후”라는 시간 위에 놓입니다.

한쪽은 전쟁과 이민의 역사, 다른 한쪽은 한국 현대사의 가장 깊은 상처를 배경으로 하지만, 두 소설은 모두 어떤 소년의 얼굴을 통해 폭력 이후의 삶을 묻습니다. 그 소년은 우리 각자가 언젠가 지나온 시간의 얼굴과 겹치기도 합니다.

2. 『연을 쫓는 아이』 – 죄책감에서 시작된 한 사람의 성장

『연을 쫓는 아이』를 읽다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죄책감”입니다. 어린 시절 한 장면에서 눈을 돌렸다는 사실, 그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기억이 주인공의 삶 전체를 따라다닙니다. 상처를 준 사람과 받은 사람의 위치가 분명하기 때문에, 독자는 쉽게 누가 옳고 그른지 판결하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소설은 그렇게 단순한 응징과 위로의 서사를 선택하지 않습니다. 작가는 주인공이 과거를 외면하며 살아가는 시간,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삶을 꾸리면서도 속으로는 한시도 그날을 떠나지 못하는 시간을 길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언젠가,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다고 느꼈을 때 그는 비로소 과거를 향해 되돌아가기로 결정합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용서받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라는 행위보다, “자신이 저지른 상처를 인정하고, 그 상처를 향해 돌아가기로 결심한 마음”입니다. 우리는 모두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이 소설을 읽으며 “차라리 보지 않았더라면” 하고 싶은 기억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 기억을 끌어안기 시작할 때 비로소 한 사람이 조금씩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3. 『소년이 온다』 – 한 도시의 상처를 증언하는 목소리들

『소년이 온다』는 한 사람의 죄책감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상처를 다룹니다. 국가 폭력 앞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산 자”라는 이유만으로 또 다른 짐을 짊어지게 됩니다.

이 소설이 특별한 이유는, 한 인물의 시선에 머무르지 않고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차례로 들려준다는 점입니다. 친구를 잃은 아이, 현장을 목격한 어른,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그날을 잊지 못하는 이들…. 각자의 목소리는 조용하지만, 함께 모이면 하나의 커다란 질문이 됩니다. “우리는 이 죽음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

『소년이 온다』에서 기억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세상이 침묵시키려 할 때 끝내 침묵을 거부하는 행위입니다. 살아남은 자가 말하지 않으면, 죽은 자는 정말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 두려움이 이 소설을 움직이는 힘이 됩니다.

4. 두 작품이 만나는 지점 – 상처를 잊지 않는 용기

『연을 쫓는 아이』의 주인공이 좁게는 자기 자신의 죄를 마주하는 여정에 서 있다면, 『소년이 온다』의 인물들은 공동체 전체의 상처를 끌어안아야 하는 자리에서 흔들립니다. 한쪽은 개인의 양심, 다른 한쪽은 역사와 기억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두 작품은 모두 “고통을 지우지 않기로 선택하는 사람들”을 그린다는 점에서 맞닿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상처를 얼마나 크게 보여주느냐가 아니라, 그 상처를 외면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주인공이 자신이 저지른 배신에서 눈을 돌리지 않는 것, 광주를 통과한 사람들이 그날의 침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두 소설은 이 작은 결심들이 인간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두 책을 함께 읽으면, “시간이 지나면 다 나아진다”는 말이 얼마나 가벼운 위로인지 다시 느끼게 됩니다. 나아간다는 것은 잊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안고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에 가깝다는 사실을 두 작품이 동시에 말해 주기 때문입니다.

5. 오늘을 사는 우리가 이 두 소설에서 받는 질문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도 각자의 상처가 있습니다. 개인적인 배신과 후회일 수도 있고, 사회적 참사와 시대의 폭력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상처는 너무 커서 선뜻 바라보기조차 어렵고, 어떤 상처는 너무 사소해 보여서 입을 꾹 다물게 만들기도 합니다.

『연을 쫓는 아이』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나는 어떤 잘못 앞에서 여전히 도망치고 있지 않은가.” 『소년이 온다』는 또 다른 질문을 건넵니다. “나는 어떤 죽음과 고통을 외면한 채 살아가고 있는가.” 두 질문은 불편하지만, 이 불편함을 피하지 않을 때 비로소 조금 다른 삶의 방향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문학은 상처를 대신 치유해 주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상처를 바라볼 수 있는 언어와,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을 건네 줄 수 있습니다. 이 두 작품이 주는 위로는 화려한 희망의 메시지가 아니라, 끝까지 버티며 기억하려는 사람들의 얼굴 그 자체입니다.

6. 이런 독자에게 추천합니다

  • 죄책감과 용서, 기억과 증언의 문제를 문학 속에서 깊이 느껴보고 싶은 분
  • 역사적 비극을 다룬 작품을, 논쟁이 아니라 서사의 힘으로 경험하고 싶은 독자
  • 개인의 성장 서사와 공동체의 상처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궁금한 분
  • 한강과 칼레드 호세이니의 세계를 비교하며 읽어보고 싶은 문학 애호가

『연을 쫓는 아이』『소년이 온다』는 단순한 비극의 기록이 아닙니다. 그것은 상처를 안고도 살아가려는 인간의 존엄을 증언하는 두 개의 목소리입니다. 완전히 치유되지 않더라도, 완벽히 용서하지 못하더라도, 기억을 붙잡고 있는 일 자체가 이미 한 걸음의 용기일지 모릅니다.

당신은 오늘, 어떤 상처를 잊지 않기로 선택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