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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왕 되기 프로젝트

오베라는 남자: 상실을 극복하는 공동체의 힘과 사랑

by 실리뽀 2025. 10. 16.

프레드릭 배크만 『오베라는 남자』 – 까칠한 한 노인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들

서론: 왜 지금, 왜 이 노인 이야기인가

동네에 한 번쯤은 있습니다. 쓰레기 배출 시간을 꼭 지켜야 한다고 잔소리하고, 주차 선을 살짝만 넘어도 인상을 쓰는 이웃. 우리는 그들을 쉽게 “까칠한 사람”, “관종 어른” 정도로 치부하고 지나치곤 합니다.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 『오베라는 남자』의 주인공도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면, 그런 이웃들을 향한 시선이 조금 달라집니다. 소설은 한 노인의 일상을 통해 “상실 이후에도 계속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차분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고독사, 1인 가구, 사회적 단절이라는 말이 익숙해진 시대에, 『오베라는 남자』는 의외로 지금 가장 필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사람은 결국, 사람 사이에서만 회복될 수 있는가?”

읽는 동안 가장 오래 남았던 인상 – 규칙에 매달린 남자의 마음

오베는 은퇴한 60대 남성입니다. 그에게는 나름의 세상이 있습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동네를 순찰하고, 주차 질서를 점검하고, 규칙을 어기는 사람들에게는 가차 없이 한마디씩 날립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고집 세고 융통성 없는 노인에 가깝지요.

하지만 이야기가 조금씩 진행될수록, 그의 ‘규칙 사랑’은 그저 성격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뒤, 그는 더 이상 마음을 나눌 대상이 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무너진 세계를 가까스로 붙잡아주는 것이 “정해진 시간, 정해진 방식, 정해진 규칙”뿐인 사람이 되어버린 거죠. 규칙은 오베에게 타인에게 휘두르는 잣대이면서, 동시에 자신이 무너지지 않도록 붙잡고 있는 하나의 손잡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베의 까칠함은 단순한 성격이 아니라 “상실을 버티기 위한 방어기제”처럼 보입니다. 이 지점을 이해하기 시작하면, 그의 투덜거림이 조금은 안쓰럽게 느껴집니다.

작품이 말하는 것 1 – 사랑은 사라지지 않고 형태만 바뀐다

소설은 현재의 오베를 따라가면서도, 동시에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가 그가 아내 소냐와 함께 했던 순간들을 간헐적으로 보여줍니다. 지나치게 달콤한 회상이 아니라, 함께 버스를 타고 다니던 평범한 날들, 오베의 서툰 표현, 소냐의 유머 감각 같은 일상적인 장면들이 이어집니다.

중요한 건, 이 회상 장면들이 독자에게 “그녀가 얼마나 완벽했는지”를 증명하기 위해 등장하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습니다. 평범하고 작은 순간들 속에서, 한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빛을 얻는지를 보여줍니다. 소냐의 부재는 단지 한 사람을 잃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베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무너졌다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이 작품이 따뜻한 이유는, 그 상실을 억지로 “극복하라”고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신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은 부재가 아니라, 남겨진 사람의 행동으로 계속 살아간다.” 오베가 이웃을 향해 내미는 손길, 불평을 늘어뜨리면서도 결국 도와주는 행동들에는 소냐에게 배운 감수성이 묵묵히 살아 있습니다.

작품이 말하는 것 2 – 우리를 살리는 것은 결국 ‘옆집 사람들’이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오베를 구해내는 존재가 ‘운명적인 사랑’이나 ‘극적인 사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를 다시 삶으로 끌어올리는 건 언뜻 평범해 보이는 이웃들입니다.

이사 온 젊은 부부, 아이들, 고양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 언어와 배경이 다른 사람들까지. 오베는 그들을 “소란스럽고 귀찮은 존재”라고 부르면서도 결국 하나하나 그들의 삶에 개입하게 됩니다. 자동차를 고쳐 주고, 병원에 데려다주고, 행정적인 일들을 대신 처리해 주면서요.

이 과정이 중요한 이유는, 오베가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을 열고 변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서서히 변해간다”는 점입니다. 누군가의 부탁을 들어주는 행동이 쌓이고, 그 사람들이 다시 오베를 찾으면서 그는 자신이 여전히 이 세계에서 쓸모 있고 의미 있는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공동체라는 단어가 거창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 소설에서의 공동체는 그저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며, 가끔 부탁을 건네고, 필요할 때 초인종을 눌러도 되는 사이”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정도의 관계면 충분히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작품이 건네는 조용한 확신입니다.

독자로서 얻은 개인적 통찰 – ‘우리 동네 오베’를 떠올려 보게 된다

책을 덮고 난 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이야기 자체가 아니라 제 주변의 “오베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아파트 게시판에 공지사항을 꼼꼼히 붙여두던 경비원 아저씨, 아이들 소음에 예민하지만 막상 사고가 나면 누구보다 먼저 나오는 이웃, 항상 잔소리가 많지만 결국 누구보다 열심히 돕던 선배까지.

우리는 종종 이런 사람들을 “불편한 존재”로만 바라보곤 합니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고 나면, 그 까칠함 뒤에 숨은 상실감과 책임감을 한 번쯤은 떠올려 보게 됩니다. “저 사람도 어쩌면, 누군가를 잃은 뒤 혼자 남아버린 건 아닐까?”라는 상상을 하게 되는 거죠.

물론 모든 까칠함을 이해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이 책을 통해, 상처 입은 사람이 세상과 맺는 서툰 방식들을 조금 더 부드러운 눈으로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동시에, 나 스스로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오베처럼 보이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다른 작품과 비교해 본 『오베라는 남자』의 위치

상실과 고독, 조용한 삶의 의미를 다룬 작품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가 한 인간의 성실한 생을 담담하게 따라간다면, 『오베라는 남자』는 거기에 유머와 이웃의 소란을 한 겹 더 얹은 작품에 가깝습니다. 혼자 버티는 사람의 존엄뿐 아니라, 주변 사람과의 관계가 만들어내는 변화까지 함께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힐링소설들과 비교해 봐도, 이 책은 지나치게 달콤하거나 비현실적인 위로를 건네지 않습니다. 오베의 삶은 여전히 불완전하고, 이웃들과의 관계도 매끄럽게만 흘러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살아볼 만하다”는 감정이 남는 이유는, 작가가 인물들의 상처와 서투름을 억지로 포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져 더 널리 알려진 이 이야기는, 원작 소설에서 훨씬 더 세밀한 심리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영화로 오베를 먼저 만났다면, 소설은 그가 왜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는지, 한층 더 깊은 맥락을 보여주는 “보충 설명서”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이 책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 이런 독자에게 특히 추천합니다

『오베라는 남자』는 특정 연령이나 상황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만 아래와 같은 독자라면, 조금 더 깊게 와닿을 가능성이 큽니다.

  • 사별·이별·퇴직 등으로 삶의 방향을 잠시 잃어버린 분
  • 혼자가 편하다고 말하면서도, 가끔은 외로운 마음이 드는 분
  • “요란한 위로” 대신, 조용히 곁에 머무는 이야기 한 편이 필요한 날
  • 이웃·가족·동료와의 관계를 다시 정비하고 싶은 시기를 지나고 있는 분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 책은 빠르게 읽어 치우는 소설이라기보다 하루에 몇 장씩, 천천히 곱씹어 읽을 때 힘을 발휘하는 유형입니다. 문장 사이사이에 숨어 있는 감정의 결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삶의 장면 하나가 불쑥 떠오르는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마무리 – 우리 곁의 오베에게 건네는 작은 인사

『오베라는 남자』는 거창한 교훈을 들이미는 소설이 아닙니다. 대신, 잔소리가 많고 융통성 없는 한 노인의 내면을 천천히 비춰보며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마음의 층위를 보여줍니다.

책을 덮고 난 후 남는 감정은 대단한 위로라기보다 “그래도, 한 번 더 살아볼까”에 가까운 작고 단단한 결심입니다. 삶이 버거운 날, 혹은 이유 없이 사람들에게 지친 날, 이 소설은 “삶은 혼자 견디는 것이 아니라 함께 버텨내는 것”이라고 조용히 상기시켜 줍니다.

언젠가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이웃이 유난히 까칠해 보인다면, 그날만큼은 오베를 한 번 떠올려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 사람의 인생에도, 소냐 같은 누군가가 있었을지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