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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왕 되기 프로젝트

페스트: 투쟁과 연대, 인간관계의 중요성

by 실리뽀 2025. 10. 15.

알베르 카뮈 『페스트』 – 팬데믹 이후 다시 읽는, 위기 속 인간에 대한 보고서

서론: 코로나를 지나온 우리가 이 소설을 다시 펼치는 이유

몇 년 전만 해도 『페스트』는 “언젠가 읽어야 할 세계문학 고전” 목록 속에 조용히 놓여 있는 책이었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가 팬데믹을 겪고 난 뒤, 이 소설은 갑자기 너무나 현재적인 이야기로 다가왔습니다. 거리두기, 도시 봉쇄, 병상 부족, 의료진의 피로, 서로를 의심하는 눈빛과 서로를 응원하는 박수까지. 우리는 뉴스 속 장면을 보면서도, 동시에 어딘가에서 카뮈의 활자를 떠올리게 되었죠.

출처: 민음사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는 전염병 소설이면서 동시에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인간답게 버티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이 글에서는 줄거리 요약을 길게 따라가기보다, 팬데믹 이후의 우리가 이 소설을 어떻게 새롭게 읽을 수 있는지를 중심으로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1. 카뮈, 부조리 속에서도 인간을 놓지 않았던 작가

프랑스 알제리에서 태어난 알베르 카뮈(1913~1960)는 흔히 “실존주의 작가”로 불리지만, 그는 자신을 철학자가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에 가깝다고 생각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전쟁과 식민지, 가난과 질병을 모두 몸으로 겪어낸 그는 “삶은 근본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조리한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그 속에서 서로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인간의 모습을 끝까지 붙들었습니다.

『페스트』는 그런 그의 문제의식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소설입니다. 피할 수 없는 재난 앞에서 인간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각자의 신념과 두려움은 어떤 얼굴로 드러나는가, 그리고 그 순간에도 도덕과 연대는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카뮈는 도시 하나를 무대로 삼아 이 질문을 집요하게 따라갑니다.

2. 봉쇄된 도시 오랑 – 현실이 되어버린 소설의 배경

소설의 무대는 알제리의 항구 도시, 오랑입니다. 평범한 일상이 이어지던 어느 날, 길바닥에 쓰러진 쥐들이 하나둘씩 발견되고, 그 이후 원인을 알 수 없는 열병과 죽음이 이어지면서 도시는 봉쇄됩니다.

『페스트』를 팬데믹 이전에 읽었던 사람과 이후에 읽는 사람은, 아마도 이 부분에서 느끼는 온도가 다를 것입니다. 예전에는 상상 속의 전염병 도시처럼 보였던 장면들이, 이제는 우리가 직접 겪은 뉴스 화면, 문자 재난 알림, 마스크 행렬로 쉽게 겹쳐지기 때문입니다.

카뮈는 재난 상황을 조금도 과장하지 않습니다. 호들갑스러운 공포 묘사 대신, 매일 조금씩 제한이 늘어나고, 사람들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가고, 이별이 길어지는 과정을 차분히 따라갑니다. 그래서 더 현실적이고, 더 무섭습니다.

3. 리외 의사 – 영웅이 아니라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

『페스트』 속 인물들 가운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단연 리외 의사입니다. 그는 이 도시에서 오랜 시간 환자들을 돌봐온 의사로, 전염병이 시작된 순간부터 끝까지 현장을 떠나지 않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리외가 전통적인 의미의 영웅처럼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는 특별한 신념을 선언하거나,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하는 인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싸움은 끝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당장 눈앞의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감염 위험 속에서도 하루하루 진료를 이어갑니다.

카뮈가 리외를 통해 보여주려는 것은 거대하고 찬란한 영웅담이 아닙니다. “이길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해나가는 태도”, 그 조용한 끈기가 바로 인간의 품격이라는 메시지에 더 가깝습니다. 팬데믹 시기, 방호복을 입고 병동을 오가던 의료진들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4. 위기 속에서 드러나는 여러 얼굴들

『페스트』에는 리외 외에도 다양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도시를 떠나고 싶어 하지만, 결국 남아 진실을 기록하는 기자, 처음에는 현실을 부정하다가 뒤늦게 방역 활동에 참여하는 인물, 종교적 해석으로 모든 일을 설명하려 하는 사람들 등.

이 인물들은 단순한 선악 구도가 아니라, 재난 앞에서 우리가 실제로 보여주는 여러 태도의 축소판처럼 보입니다. 누군가는 음모론을 믿고, 누군가는 숫자만 따지며, 누군가는 묵묵히 일터를 지킵니다. 카뮈는 특정한 태도 하나만을 옳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누가 타인을 향해 손을 내밀고 있었는가”를 묵묵히 보여줄 뿐입니다.

5. 팬데믹 이후, 『페스트』가 새롭게 들려주는 것들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에 따르면, 코로나 이후 전 세계에서 『페스트』 판매량이 다시 늘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묻게 된 것이겠지요. “우리가 겪는 이 상황을, 누군가는 이미 이야기한 적이 있을까?”

지금 이 책을 읽으면 특히 강하게 다가오는 주제는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1)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 그래도 계속 살아가는 일

전염병은 누구를 선택해서 공격하지 않습니다. 착한 사람, 성실한 사람, 나쁜 사람을 가리지 않고 찾아오죠. 카뮈가 말하는 “부조리”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노력과 결과, 도덕과 보상이 깔끔하게 연결되지 않는 세계.

하지만 그는 그 부조리를 이유로 냉소에 빠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을 도와야 할 이유”가 더 절실해진다고 말합니다. 결과는 보장되지 않지만, 여전히 누군가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행동하는 일. 그 쓸쓸하지만 단단한 선택이 『페스트』의 중심에 있습니다.

2) 연대와 무관심 사이, 우리가 서 있었던 자리

팬데믹의 첫 해, 우리는 서로에게 박수를 보냈습니다.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힘내세요”라는 문장을 나눴죠. 시간이 지나면서 피로감과 냉소도 함께 찾아왔습니다.

『페스트』를 읽다 보면, 위기가 길어질수록 연대와 무관심이 동시에 자라난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점점 타인에게 무뎌지고, 또 다른 사람들은 끝까지 책임감을 놓지 못합니다. “나는 그때 어느 쪽에 더 가까웠을까?”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3) 기록하는 사람들의 의미

소설 속에는 도시의 상황을 기록하려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전염병이 끝난 뒤에도 이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도 지난 몇 년을 돌아보면, 뉴스 기사, 일기, SNS 글, 사진 속에 각자의 ‘페스트’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카뮈는 이런 기록 행위가 단순한 정보의 축적이 아니라, “부조리한 시대를 잊지 않으려는 작은 저항”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6. 개인적으로 얻은 통찰 – 다음 위기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페스트』를 덮고 나면, 거창한 교훈 대신 아주 단순한 문장이 남습니다. “다음에 비슷한 일이 또 온다면, 나는 최소한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하고 싶다.”

누군가를 대신해 세상을 구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 주변 사람들에게는 덜 무심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 위기의 원인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확인되지 않은 분노와 혐오를 퍼뜨리지 않겠다는 다짐.

카뮈는 “완벽한 정의”를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실천들, 예를 들면 방호복을 입고 병동을 지키는 일, 집에 머무르며 누군가의 안전을 지켜주는 일, 혹은 단지 공포에 굴복하지 않고 하루를 견디는 일의 가치를 상기시켜 줍니다.

7. 다른 작품과 나란히 놓고 보기

카뮈의 다른 소설인 『이방인』이 개인의 고립과 “세상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감각”에 주목했다면, 『페스트』는 한 도시 전체를 무대로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가”를 묻는 작품입니다.

카프카의 『변신』 속 그레고르가 가족과 사회에서 서서히 밀려나는 과정을 보여준다면, 『페스트』는 위기 속에서 누가 버려지고 누가 끝까지 남는지를 보여줍니다. 조금 더 희망적인 방향에서요.

이런 작품들을 함께 읽어보면, “부조리한 세계를 마주하는 여러 태도”를 비교해볼 수 있습니다. 침묵하는 사람, 저항하는 사람, 기록하는 사람, 일상을 이어 가는 사람. 그리고 그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얼굴을 하고 살아가고 싶은지도 조금씩 또렷해집니다.

마무리 – 페스트는 다시 온다, 그래서 더 기억해야 한다

카뮈는 소설의 마지막에서 페스트균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언젠가 다시 깨어날 수 있다고 암시합니다. 이 말은 실제 전염병에 대한 경고이면서 동시에, 인간 안에 늘 잠들어 있는 이기심과 무관심, 혐오와 두려움에 대한 비유처럼도 읽힙니다.

우리는 이미 한 번 큰 위기를 겪어냈고, 언젠가 또 다른 형태의 위기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때 이 소설의 한 장면, 한 인물이 떠오른다면, 그것만으로도 『페스트』는 제 역할을 다한 것일 겁니다.

현실이 버거운 날, 이 책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도, 아직 지키고 싶은 인간다움이 남아 있는가?” 그 질문에 한 번쯤 진지하게 답해보고 싶은 날, 『페스트』는 다시 펼쳐볼 가치가 충분한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