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산문집 『단 한 번의 삶』 – 거창한 성공 대신 오늘 하루를 돌려받는 법
서론: 어느 날, 문득 인생이 너무 빨라졌다고 느낀다면
알람에 눈을 뜨고, 습관처럼 휴대폰을 확인하고, 일과 사람, 해야 할 일들 사이를 정신없이 뛰어다니다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스칩니다. “도대체 내가 오늘 뭘 한 거지?” 몸은 분명 하루를 살았는데, 마음은 그날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날들. 김영하의 산문집 『단 한 번의 삶』은 바로 그런 날의 한가운데에서 조용히 말을 건네는 책입니다.
이 책을 펼치면 거창한 성공 스토리도, 인생을 극적으로 바꾸라는 요구도 나오지 않습니다. 대신 “한 번뿐인 삶이라면,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질문이 아주 낮은 목소리로, 그러나 꾸준히 반복됩니다. 그래서 이 책은 인생을 뒤집는 지침서라기보다, 잠깐 숨을 고르게 해주는 긴 호흡의 산문집에 가깝습니다.
1. 김영하의 문장 – 인생을 과장하지 않아서 더 오래 남는 말들
김영하의 글은 늘 현실의 온도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의 문장처럼 느껴집니다. 삶을 지나치게 미화하지도, 그렇다고 냉소적으로 잘라버리지도 않습니다. 『단 한 번의 삶』에서도 그는 “열심히 살면 다 잘 된다”는 식의 피곤한 메시지를 건네지 않습니다. 대신, 누구나 겪어봤을 법한 작은 실패, 사소한 후회, 애매한 기쁨들의 순간을 포착해 그 위에 조용히 한 줄의 문장을 올려놓습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에 따르면, 김영하는 여러 강연과 방송에서 “책을 읽는 일과 살아가는 일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자주 해왔습니다. 이 산문집에서도 그 태도는 그대로 이어집니다. 책 속에서 그는 자신의 독서 경험과 삶의 장면을 자연스럽게 섞어,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지인이 커피 한 잔 앞에 놓고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풀어냅니다.
읽다 보면 화려한 비유보다 담백한 관찰이 더 오래 남습니다. 다 읽고 나서도 특정 문장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할 수 있지만, “조금 덜 조급해져도 괜찮다”는 기분만큼은 오래 남는 책입니다.
2. 『단 한 번의 삶』이 붙잡고 있는 것들 – 일, 기억, 관계, 그리고 나 자신
산문집의 글들은 느슨하게 흩어져 있는 것 같다가도, 한 방향을 향해 서 있습니다. 그 방향은 결국 “한 번뿐인 삶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모입니다. 책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것은, 이 질문을 거창한 인생 전환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일상 장면들에서 찾아간다는 점이었습니다.
2-1. ‘일’에 대한 태도 – 커리어가 아니라 하루의 무게
우리는 흔히 일을 “커리어”라는 큰 틀로 바라봅니다. 지금의 선택이 10년 뒤 어떤 이력을 만들지, 어떤 타이틀을 가져다 줄지 계산하느라 정작 오늘 하루의 감각을 놓치곤 하죠. 책 속에서 김영하는 일을 그렇게 멀리서만 보지 않습니다.
그는 우리가 출근길에 느끼는 피로, 투명인간이 된 것 같은 회의 시간의 공기,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와 불 꺼진 방에 들어섰을 때의 어딘가 허전한 마음을 그대로 인정합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이 하루가 마음에 쌓여 내 인생이 된다면, 내가 버티고 있는 이 시간도 언젠가는 하나의 장면으로 떠오르지 않을까.” 일을 바꾸지 못하더라도, 일을 바라보는 문장은 조금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2-2. 기억과 후회 – 지나간 시간을 대하는 법
『단 한 번의 삶』에서 자주 등장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기억’입니다. 누구나 인생에서 조금씩 후회를 안고 살아갑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그때 왜 그렇게 했을까”라는 자책에 빠지곤 하죠.
김영하는, 이미 지나가 버린 선택들을 가혹하게 심판하는 대신 그때의 나도 최선을 다해 결정했을 것이라는 최소한의 신뢰를 제안합니다. 과거의 나를 미워하는 대신 “그때의 나 덕분에 지금 여기까지 왔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면 기억은 후회의 무게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집니다. 이 관점은 과거를 미화하자는 말이 아니라, 자기혐오에 빠지지 않는 건강한 거리 두기에 가깝습니다.
2-3. 관계와 말 – 큰 사랑보다 작은 말 한마디
산문집 곳곳에는 가족, 친구, 낯선 사람과의 대화가 등장합니다. 김영하는 거창한 희생이나 드라마틱한 화해보다, 사소한 한마디가 삶을 바꾸는 순간을 주로 이야기합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스친 한 사람의 표정, 힘들다는 말을 쉽게 꺼내지 못하는 친구의 침묵 같은 것들 말이죠.
그 장면들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누군가에게 건넨 사소한 말 한마디가 그 사람의 하루를 살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관계가 점점 숫자로만 보이는 시대에, 한 사람의 하루를 진심으로 떠올려 보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돌아보게 하는 대목입니다.
3. 책을 읽으며 바뀐 ‘하루 사용법’ – 작은 적용의 예시들
이 책을 읽고 나서 가장 먼저 바뀐 건 거창한 인생 계획이 아니라, 정말 사소한 몇 가지 습관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입니다.
- 출근길 지하철에서 무의식적으로 SNS를 열기 전에, 오늘 하루 꼭 기억하고 싶은 장면을 하나만 떠올려 보기.
- 퇴근 후 완전히 지쳐 있을 때, “오늘은 아무것도 못 했다” 대신 단 하나라도 잘해낸 일을 찾아 스스로 인정해 주기.
- 오래 연락하지 못한 사람에게 미루던 안부 메시지를 한 줄이라도 보내 보기.
이 작은 행동들은 모두 책 속에서 직접적으로 “이렇게 하라”고 지시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단 한 번의 삶』을 읽는 동안 “오늘을 조금 더 내 편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고, 그 마음이 구체적인 방식으로 흘러나온 결과에 가깝습니다.
이런 개인적인 적용 사례를 덧붙여 두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이 책의 가치는 문장 그 자체보다, 독자가 자신의 일상에서 무엇을 하나라도 바꿔 보고 싶게 만드는 힘에 있기 때문입니다.
4. 다른 에세이들과 비교했을 때, 『단 한 번의 삶』만의 위치
요즘 서점에는 “행복해지는 법”, “내 마음을 안아주는 글”을 내세운 에세이들이 넘쳐납니다. 그중 상당수는 읽는 순간에는 위로가 되지만, 책을 덮고 나면 구체적으로 남는 것이 적을 때도 있습니다.
『단 한 번의 삶』은 그 사이에서 약간 다른 지점을 차지합니다. 먼저, 이 책은 독자를 과하게 달래거나 결론을 대신 내려주지 않습니다. “괜찮다”는 말을 반복하는 대신, 독자가 스스로 자신의 삶을 바라보도록 슬쩍 손을 들어 방향만 가리켜 주는 식입니다.
또 하나의 차별점은, 김영하가 여러 소설과 강연을 통해 쌓아온 오랜 ‘이야기 경험’이 산문 속에도 녹아 있다는 점입니다. 문장이 짧고 쉽게 읽히지만, 한 에세이 안에 작은 기승전결이 들어 있어서 마치 짧은 단편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자기계발서처럼 “단계별 목표”를 제시하지도 않고, 지나치게 감상에만 머무르지도 않기 때문에, 현실과 감성 사이의 균형을 찾고 싶은 독자에게 특히 잘 맞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 이런 독자에게 특히 추천하고 싶습니다
『단 한 번의 삶』은 다음과 같은 분들에게 특히 잘 맞을 것 같습니다.
- 퇴근 후 소파에 주저앉아 “오늘도 그냥 버텼다”는 생각만 드는 직장인
- 새로운 목표를 세우는 대신, 잠시 멈춰 서서 지금까지를 돌아보고 싶은 사람
- 김영하의 소설은 읽어봤지만, 그의 산문은 처음인 독자
- 자기계발서는 부담스럽고, 너무 가벼운 힐링 에세이는 아쉬웠던 독자
이 책은 “지금 당장 퇴사하라”거나 “완전히 다른 삶을 살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의 삶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그 안에서 나만의 의미를 다시 짚어 보게 하는 책입니다.
6. 마무리 – 단 한 번의 삶, 그래서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 것인가
책장을 덮고 나면 화려한 가르침 대신 조용한 질문 하나가 남습니다. “내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오늘 하루를, 조금 더 나답게 보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단 한 번의 삶』은 우리의 인생을 장기 프로젝트로만 보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의 표정과 마음을 살피는 일을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단 한 번뿐이라는 사실이 우리를 조급하게 몰아붙이는 대신, 오늘의 작은 선택들을 더 소중히 여기게 만든다면, 그 책은 이미 제 역할을 다한 것이겠지요.
인생이 너무 빨라져서 마음이 자꾸 뒤에 남겨지는 느낌이 들 때, 이 산문집을 천천히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거창한 결심 대신, 내일의 나를 조금 더 이해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면 그 자체로도 충분히 값진 독서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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